2014 글로벌탐방단 (아시아여성인권의 현주소) 후기
- 김현지 (법12)
김지영(법13), 김현지 (법12), 양지우(법12), 엄다솔(정외12), 최효진(정외12), 김민주(중문10), 지현지(행정11) 학생과 법학부 홍성수 교수가 2014년 7월 21일부터 28일까지 <아시아 여성인권의 현주소>라는 주제로 말레이시아로 글로벌탐방을 다녀왔습니다. 숙며여대에서는 글로벌역량증진을 위해 매년 선발된 학생들로 구성된 글로벌탐방단을 세계 각국에 보내고 있습니다. 아래는 김현지 학생이 쓴 후기입니다.
낯선 곳에서 되돌아보기
숙명여자대학교의 창학 배경을 통하여 당시 여성 교육에 대한 사회의 관심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창학 당시에 여성은 인권 신장과 계몽의 대상으로만 보였지만 현대에는 여성이 인권이나 정의 등의 가치를 전파하는 주체가 되었고, 숙명여대의 학생들 또한 다양하고 첨예해진 소수자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수학하고 있습니다. 우리 탐방단은 여성문제를 비롯한 소수자 인권 문제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온 학생들로 그 동안 공부해왔던 우리 사회의 여성인권 문제를 다른 사회를 통해 되짚어보고자 말레이시아로의 글로벌탐방단을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사진: 글로벌탐방단의 인터뷰지>
탐방 국가가 말레이시아로 결정되면서 행선지를 대학교와 여성단체로 정했습니다. 여성인권의 이론적 배경과 전반적 상황을 알기 위해 말라야 대학교의 젠더학과를 방문했고, 말레이시아 내의 여성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활동해온 여성 단체인 All Women’s Society(이하 AWAM), Sisters in Islam(이하 SIS), International Women's Rights Action Watch Asia Pacific(이하 IWRAW-AP)를 방문했습니다. 일주일간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의 여행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논의되는 가부장제 아래의 성 역할, 성폭력, 가족 정책 등 여성 관련 쟁점들을 되돌아 볼 수 있었습니다.
<사진: 다양한 모습만큼 다양한 음식들>
성으로 구분된 고정관념 깨기_말라야 대학교 방문기
여성 관련 문제가 우리 사회에 등장하면 흔히 볼 수 있는 반응이 있습니다. 여성은 더 이상 사회적 약자가 아니며 오히려 우리 사회는 여성 상위 시대라는 것입니다. 여성들도 기본권이 보장되고 경제 활동을 하고 있으며 남성들은 여성들을 존중하고 있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본 탐방단은 말레이시아의 거리를 거닐고, 말라야 대학교를 방문하면서 다른 생각을 했습니다.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여전히 젠더 문제를 유효하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진: 쿠알라룸푸르에 위치한 힌두교 성지 바투 동굴>
말레이시아는 다문화 국가로 이슬람 문화 이외에도 동아시아 문화와 힌두 문화가 공존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다양한 생활 방식을 가진 여성들을 볼 수 있습니다. 거주 지역과 경제력에 따라 그 생활 모습도 달라집니다. 이런 사회 모습에 따라, 히잡을 쓴 젠더학과 교수가 있고 부유한 화교출신 시민운동가도 존재합니다. 어딘가에는 여성의 복장으로 알려진 히잡을 쓰며 자신을 여성으로 정체화한 남성도 있을 것입니다. 말레이시아에는 이슬람 국가로만 단정 지을 수 없는 다양성이 있었습니다. 마치 우리 사회의 여성들이 다양한 것처럼 말입니다.
<사진: 말라야대학교 젠더학과 교수님과의 면담>
말라야 대학교 교수님들과의 면담을 끝내고 우리가 막연히 옳거나 보편적이라고 여긴 생각들이 사실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를 되돌아보았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우리 사회는 이제 여성 혹은 젠더 문제가 무의미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여성 혹은 젠더 문제가 존재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습니다.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은 개개인의 행동과 생활을 제약합니다.
그리고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은 우리 법에도 고스란히 존재합니다. ‘남녀고용평등과 일ㆍ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을 살펴봅시다. 이 법 제1조에서는 이 법의 목적을 “고용에서 남녀의 평등한 기회와 대우를 보장하고 모성 보호와 여성 고용을 촉진하여 남녀고용평등을 실현함과 아울러 근로자의 일과 가정의 양립을 지원함으로써 모든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여성이 가정과 일을 모두 병행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니 좋은 법처럼 보이지만 바로 그것이 문제입니다. 이 법에 따르면, 가정의 일은 여성 개인만이 맡는 일이라는 전제가 있습니다. 이는 가사노동과 양육노동이 여성만의 것이라는 성 역할을 고스란히 받아들여 여성에게 주어지는 가사 및 경제활동의 이중고를 방치하게 됩니다. 그 결과 기업은 여전히 남성중심적 문화를 해결하지 못한 채 이중고에 시달리는 여성을 기피하고 비난합니다. 여성은 양질의 일자리에 진입 자체가 어려워지며 남성들은 가사 및 양육에 필요한 사회적 지원에서 제외됩니다.
위와 같은 법의 본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여성에게 집중된 가사노동을 분산하기 위해 가사노동을 사회화하는 정책이 있어야 합니다. 가사노동에 매몰된 여성은 그 밖의 노동을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육아를 비롯한 가사 또한 교육이나 의료처럼 사회에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이므로 법은 성 역할에 구애 받지 않고 복지시설과 산업이 성장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말라야 대학교를 방문하여 면담을 진행하면서 이슬람 여성을 획일적으로 보았던 스스로를 반성할 수 있었습니다. 말레이시아 여성 또한 주체적으로 평등을 위해 차별과 맞서고 있었습니다. 더불어, 이슬람 여성에 대한 인식처럼 우리 사회에도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엄연히 존재하고 법에도 영향을 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가정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_Sisters in Islam
두 번째 날 방문한 곳은 Sisters in Islam이라고 하는 여성 관련 시민단체였습니다. 이곳에서는 가정폭력 등에 대한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며 이슬람교를 여성주의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이에 따라 샤리아법을 개정하는 운동도 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이슬람 교인을 규율하는 말레이시아의 가정법인 샤리아법에 대해 배우고 이슬람교의 정체성을 새롭게 해석하는 SIS만의 활동을 볼 수 있었습니다.
<사진: Sisters in Islam>
샤리아법이란 샤리아라고 통칭되는 이슬람 규범체계에 따라 만든 법을 말합니다. 이는 우리의 법체계인 근대법과는 대조적입니다. 근대의 법은 시민들이 선출한 의회가 만드는 것이라는 사고관이 전제됩니다. 그러나 이슬람교에서는 절대신이 법을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절대신이 샤리아라는 규범체계를 만들었고 법학자들은 샤리아에 따라 민법, 형법의 영역에서 샤리아법을 발전시킨다는 것입니다.
<사진: SIS의 활동을 정리한 발표자료>
말레이시아의 경우 가정법만을 샤리아법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말레이시아 내의 이슬람교인들에게만 적용됩니다. 이 법은 여성인권을 위한 많은 개선이 있었으나 최근 들어 개선 이전으로 회귀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일부다처제가 허용되고 아내는 미성년자 동의 및 대리권이 없으며 여성은 상속에서 차별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후퇴에 SIS는 항의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전 세계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불안정해진 사회를 통합하기 위해 이슬람 사회가 가지고 있던 고유의 정체성을 강화한 것이라고 답합니다. 그러나 SIS의 관계자는 이슬람교의 정체성을 강화한다는 명분이 여성에 대한 억압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합니다. 가정법 개정은 사회적 약자를 배제시키고 기득권만을 단결시키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SIS에서는 이러한 상황에서 두 가지 방식으로 가정법의 재개정을 추진합니다. 이슬람 정체성 강화라는 가치와 소수자 권리라는 가치를 함께 가져갈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 현재 문제가 되는 법들이 실상 정부가 내세운 명분에 부합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밝혀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슬람 경전에는 일부다처제에 관한 언급이 있고 이에 따라 말레이시아 현재 가정법에서는 일부다처제를 허용합니다. 이에 대해 SIS에서는 이슬람 경전을 페미니즘의 시각을 통해 새롭게 해석하며 이슬람 경전의 가치와 여성의 권리를 함께 추구합니다. 즉, 경전에서는 여러 명의 아내나 노예를 둘 수 있다고 하지만 이들은 결국 독립해야 하는 존재들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아내는 남편에게 경제적으로 존속된 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독립하고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대등한 주체라는 것이지요. 더불어, SIS에서는 일부다처제가 경제력에 따라 달리 적용되고 있으며 이는 종교적 가치에 어긋난다고 지적합니다. 돈이 많으면 더 많은 아내를 두고 이혼이 쉬워지며 돈이 없으면 아내를 둘 수 없거나 대가족이 함께 가난해지지만 이에 대한 정부의 대책은 없는 것입니다.
SIS와의 인터뷰를 통해 우리는 우리나라의 가정관련법을 되돌아보고 우리 고유의 가정관 아래에서 소수자의 권리가 보장되고 있는지 등을 살펴보았습니다. 우리의 가정관련법에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작용하는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는 단적으로 요약해보자면 ‘부모가 존재하고 자식들이 있는 가정이 정상적’이라는 사고방식 입니다. 우리나라의 가정관련법들은 주로 정상가족을 전제하고 만들어진 탓에 소위 ‘비정상적인’ 가족들은 불이익을 겪습니다. 독신 가정, 공동체 가정, 성소수자 가정은 서류상 비혼이라는 이유로 세금 혜택을 받지 못하고 의료 절차에 있어서도 동거인에 대한 권리가 없습니다. 서류상 부양자가 없어 임대주택에서 항상 순위가 밀리기도 합니다.
이에 따라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대표적으로 작용하는 민법의 결혼 제도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도 존재합니다. 민법의 결혼 제도는 1대1 관계의 여남 사이에서만 가능하며 법은 이들만을 보호합니다. 부부는 상속을 비롯한 재산권을 보장받으며 서로에게 부양도 요구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가족들은 부부만큼이나 강한 유대감을 가지고 가족과 유사한 삶을 살고 있으나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혼인제도 대신 시민결합과 같은 프랑스의 제도(PACS)를 요구합니다. 다양한 형식의 공동체를 인정하고 국가가 이를 파악할 수 있게 하되 가족으로서 법적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SIS를 방문하여 여성 인권과 자신들의 정체성이라는 가치를 함께 지향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공동체의 정체성이라는 이름으로 기득권과 다른 사람들을 배척했던 것은 아닌지 성찰하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성폭력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_All Women's society
AWAM은 말레이시아 내에서 가장 대중적인 여성 단체입니다. 이들의 주된 활동이 젠더 문제에 대한 대중교육이기 때문입니다. AWAM은 각종 교육기관에서 대중을 대상으로 젠더 문제를 교육하고 있는데 최근 주제는 반성폭력입니다. 우리는 AWAM의 활동을 통해 반성폭력에 관한 논의를 공부하고 여성만이 아닌 가족이나 남성 등 다양한 사회 구성원이 여성운동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하는 이들의 창의력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사진: All Women’s Society >
AWAM은 말레이시아 사회에서 벌어지는 성폭력 문제들을 피해자 개인이 감수하는 것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를 사회적으로 공론화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와 말레이시아 사회는 공통적으로 성폭력을 흔히 ‘짐승 같은 남성 가해자’와 ‘행실이 바르지 못한 여성 피해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로 인식합니다. 그래서 사회는 짐승 같은 남성 가해자에게 엄벌을 요구하는 한편 여성 피해자가 잘못한 것은 없는지, 심지어는 예민하게 군것은 아닌지 등을 따져보기도 하며 각 개인에게 이 사건의 모든 책임을 전가합니다.
이러한 인식에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우선 극악한 성폭력 사건에 초점을 맞추어 자극적인 서사에만 매몰되면 피해자 보호 및 성폭력 예방 등 다른 문제점들을 간과하게 됩니다. 제도가 미비함에 따라 피해자는 수사과정에서 2차적인 성폭력을 당하기도 하고 재원 부족으로 상담을 받지 못하기도 합니다. 아동성폭행은 저소득층 아동에게서 많이 벌어지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낮 시간 방치되는 저소득층을 보호하기 위한 시설이 구축돼야 하나 이에 대한 지원이 부족합니다. 직장, 군대, 대중교통, 인터넷, 가족이나 연인 사이에서 벌어지는 성폭력 문제에 대응하는 각 사회 기관들의 역량도 약해집니다. 요컨대, 성폭력에 대한 단편적 접근은 피해자 개인에게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전가하는 것입니다.
성폭력이 가해자를 엄벌하는 것으로 끝난다면 성폭력은 지속될 것이며 피해자의 삶은 나아지지 않습니다. 엄벌은 범죄를 완전히 차단할 수 없으며 피해자에게는 별도의 정책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AWAM에서 개인만이 성폭력을 감수하지 않고 이를 끊임없이 공론화하려는 것처럼 우리사회 또한 성폭력에 대해 감정적으로만 반응하지 않고 꾸준히 이를 대응하기 위한 관심과 투자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사진: 숙소에서 자료 검색 중>
끊임없는 성찰하기_나가며
<사진: 말레이시아 내 성소수자 문제를 함께 논의한 IWRAW-AP>
이처럼 다양한 여성관련 기관에서의 면담을 통해 말레이시아의 성역할, 성폭력, 가정 문제를 배웠고, 이를 통해 우리사회는 어떠한지도 다시 생각하며 우리가 공부해왔던 것들을 다시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에 성역할로 인한 간접적 차별이 여전하다는 점,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통찰이 부족한 점, 정부가 새로운 형태의 가정을 포섭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점들을 재확인했습니다. 글로벌탐방단은 말레이시아 여성에 대한 편견이 오만이었음을 새로 알고, 자칫 잊을 수도 있던 그 동안의 지식들을 재확인하며 더욱 성장할 수 있던 기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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