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변호인>에 열광하는 이유
국가 폭력 문제와 민주주의 가치, 과거를 이야기하는 영화가 가진 현재성
어느 대자보에 쓰인 첫머리처럼, ‘하 수상한’ 한 해가 저물었다. 수많은 사건과 논란들로 빼곡히 채워졌던 2013년. 한 해는 저물었지만,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과 같은 사건들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며, 군 사이버 사령부에까지 그 논란의 여파가 미쳤다. 청춘들의 안녕하지 못함을 고하는 대자보들은 대학가에서 SNS 게시글로 그 형식을 옮겨갔으며, 여전히 치유되지 않는 사회의 문제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지금과 같은 하 수상한 시절을 다뤘던 한 편의 영화가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1980년대 부산을 배경으로 한 영화 <변호인>은,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변호사 시절 수임했던 ‘부림사건’을 그 바탕에 두고 있다. <변호인>은 변호사이자 대통령으로 사는 삶을 살았던 인물을 기반으로 했기에 제작 초기부터 우려의 목소리를 들었다. 게다가 이 영화는 주인공 송우석 역할의 송강호를 제외하면 흥행을 담보하는 ‘스타’의 존재가 없으며, 딱딱하고 무거운 법과 정의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렇듯 여러 핸디캡을 지니고 있는 이 영화가 어떻게 천만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일까. 법사회학자 홍성수 교수와 함께 우리 사회가 <변호인>에 열광하는 이유에 관해 이야기 나누어보았다.
‘국가는 국민입니다.’, 속 시원하게 소리치는 영화
<변호인>이 관객들에게 첫선을 보인 2013년 12월 18일은 제18대 대선 1주년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당시 대통령 선거에서 주요 쟁점으로 떠오른 사건은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의혹이었다. 이 사건은 선거를 3일 앞둔 시점에 터진 경찰의 중간수사 발표로 성급히 마무리되는 듯했지만, 검찰에 의해 국정원 직원 의심 SNS 계정 1,100여 개, 게시글 78만 건 등이 발견돼 여전히 사건 관계인들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이다. 뿐만 아니라 이른바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과같이 1970·80년대에나 일어날 법한 일들이 거대 국가기관에 의해 조작되었다는 의혹이 일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을 거친 뒤, 국민들은 국가권력의 정당성과 국가폭력의 문제에 대해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을 규탄하는 시위에서 주로 등장했던 문구들은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와 같은, 국민주권의 원리를 담은 헌법 조항이었다. 홍성수 교수는 ‘국가폭력의 문제에 대해서 국민들은 여전히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다’며, <변호인>이 ‘(국가폭력의) 문제를 굉장히 드라마틱하게, 속 시원하게 풀어내고 있고, 이를 통해 국민들이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있는 점’을 흥행의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영화 속, ‘국가는 국민입니다.’라는 송우석 변호사의 외침이 관객들에게 유달리 큰 울림을 주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라 볼 수 있다. <변호인>의 물리적 배경은 과거이더라도, 관객들의 공감을 자아낼 수 있는 현재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가해자와 구원자, 법조인의 양면성을 드러내는 영화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에 큰 전환점이 되었던 것은 수사에 외압이 있었다고 밝힌 권은희 수사과장과 윤석열 검사의 양심선언이었다. 직업윤리를 지킨 이들의 모습에 많은 국민은 박수를 쳤고, 응원했다. 반면 어느 차장검사는 송년회 모임에서 여기자를 성추행해 구설수에 올랐고, 이른바 ‘연예인 해결사’ 검사는 검사 최초로 ‘공갈 혐의’를 받는 불명예를 얻었다. 이렇듯 법을 다루는 이들의 양면적인 모습은 <변호인> 속 법조인의 모습과 닮아있다. 홍성수 교수는 ‘국가폭력의 가해자 역할을 하는 것도 법조인이고 거기에 대해서 변호의 역할을 맡는 사람, 구원자로 등장하는 것도 법조인’ 이라며, 국민들이 많은 기대를 걸고 있는 법조인들의 실망스러운 모습이 ‘송우석 변호사와 같은 사람이 우리 사회에서 좀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욕구를 증폭시켰다고 분석했다. 직업윤리를 지키며 정도(正道)를 걷는 정의로운 법조인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이 영화의 흥행에 영향을 준 것이다.
변호‘사’가 아닌 변호‘인’, 연대의 의미를 일깨우는 영화
올 한 해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과 함께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던 사건 중 하나는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열풍이다. 스펙과 학점, 취업 경쟁에 내몰려 사회 현안에 대해 쉽사리 의견을 개진하지 않았던 대학생들이 ‘대자보’라는 과거의 매체를 통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대자보 열풍은 무한 경쟁 사회의 문제점이나 역사 왜곡 문제, 밀양 송전탑 문제 등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중에서도 철도 노조 파업에 대한 힘을 실었고, 이는 22일간의 최장기 파업이 가능케 했다. 홍성수 교수는 ‘혼자 힘으로 도저히 문제를 극복할 수 없었을 때, 송우석 변호사가 손을 내밀면서 문제의 돌파구가 생기고, 또 문제가 해결되기 어려운 상황에 빠졌을 때 양심적인 제보자인 군의관이 등장해서 문제의 돌파구를 찾는다. 그리고 송우석 변호사가 곤궁에 빠졌을 때는, 다른 변호사들이 우르르 몰려와 공동 변호인을 자처하면서 또 문제가 풀린다’며 ‘변호인이 주는 메시지 중에 하나가, 연대인 것 같다’고 평했다. 결국, 철도노조 파업을 통해 시민들이 깨달은 연대의 의미가 영화의 주요 메시지와 맞닿아 있었다는 뜻이다.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될 과거, 지금 우리의 역할을 묻는 영화
‘마치 영화 같다’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사람들에게 ‘영화’란 일어날 수 없는 어떤 일이자 허구이며, 비현실이다. 한편으론 우리가 꿈꾸는 판타지이기도 하다. 지난 한 해 관객들에게 <변호인>이라는 영화가 유달리 절실했고, 강렬했던 것은 이 영화 속에 지금 우리 사회에서 다소 결핍된 ‘판타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불의에 맞서 정의를 말하는 송우석 변호사가 바로 그것이다. 그렇기에 한편으론 <변호인>의 흥행이 씁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 사회의 현실이 영화에서 말하는 과거보다 더 나았다면, 우리는 <변호인>에 이만큼 열광했을까. 하지만 <변호인>이 우리 사회에 대한 씁쓸함만을 남기는 것은 아니다. 판타지를 현실로 실현하기 위해 우리가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할지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송우석 변호사의 변화된 삶까지 자세히 담고 있지는 않다. 시위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을 통해 그가 자신의 변화된 가치관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그는 평탄한 삶을 버렸기에 이전보다 더 힘든 나날을 살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그가 지치지 않고 사회에 대해 목소리를 낼 것이라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그의 뒤에 수많은 변호인이 존재한다는 사실 덕분이다. 이렇듯 <변호인>은 우리가 정의를 외치는 누군가의 변호인이 된다면, 뼈아픈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며 우리가 바라는 그 판타지가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김예지 기자>
* 위의 글은 숙명여대 법과대학 <법지法誌> 별간호 제2호(2014년 3월 3일 발간) 1면에 실린 기사를 전제한 것입니다. 기사 전제를 허락해준 <법지>에 감사드립니다.
'法대로(law)' 카테고리의 다른 글
[法대로] ‘단말기 유통법’ 국회통과, 10월부터 보조금 지원 경쟁 사라진다 (0) | 2015.05.01 |
---|---|
[法대로] 장애인 인권 보장, 그 당연한 권리 (0) | 2015.05.01 |
[法대로] FTM(Female To Male), 외부성기성형 없이 성별정정 인정받아 (0) | 2015.05.01 |
[法대로] 화제의 영화 <변호인> 속 법이야기 (0) | 2014.03.25 |
[法대로] 영화 'Evil angels', 배심제도의 암면을 비추다 (0) | 2014.03.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