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M(Female To Male), 외부성기성형 없이 성별정정 인정받아
성전환자 성별정정 인정한 대법원 최초 판결 이후 유의미한 첫걸음
몸에 맞지 않고 마음대로 벗을 수도 없는 옷을 입었다고 생각해보자. 다른 사람들의 좋지 않은 시선이 두려워 숨어 지낼 수밖에 없지만 국가가 만든 법은 그 옷을 갈아입기 어렵게 정해두었다. 이렇듯 성전환자들에게 ‘성(性)’은 맞지 않고 심지어 불쾌한 옷이 될 수 있다. 이들에게 성별정정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과 존엄성’의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법원은 성전환자의 성별정정에 대해 엄격한 기준을 요구한다. 성기와 같은 외부적요소가 성별정정의 본질, 행복 추구의 본질이 될 수 있을까? 이와 관련하여 2006년 6월 22일 성별정정을 허가한 대법원 최초의 결정과 2013년 3월 15일 성기성형 없이 성별정정을 인정한 서울서부지방법원의 판례가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대법원】2006.6.22. 자 2004스42 전원합의체 결정 [개명·호적정정]
A씨는 여자로 태어났으나 어릴 적부터 남성이라는 성 주체성을 형성하였다. 때문에 줄곧 남성처럼 행동하였고 주변으로부터 남성으로 인정받을 때 행복감을 느꼈다. 그러나 A씨는 공적인 면에서 여전히 여성으로 취급받았기 때문에 사회적 인정과 본인의 성별 인식간의 괴리감으로 고통 받다가 1992년에 성전환수술을 받았다. 이를 통해 A씨는 정신적·육체적으로 일치된 성을 갖게 되었으며 여성과의 결혼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A씨는 호적상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과 혼인신고를 할 수 없었고 완전한 남성으로 인정받기 위하여 법원에 호적정정과 개명을 신청하였다.
1심법원과 2심법원은 A씨의 신청을 기각하였다. 호적정정은 호적법 제120조에 의하여 호적의 기재가 법률상 허용될 수 없는 것 또는 그 기재 당시에 착오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그런데 A씨는 여성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출생신고 당시 ‘여’로 기재된 것은 착오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그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법체계는 국민의 성별을 기준으로 그 규율을 다르게 하고 있기 때문에 2심법원은 성전환을 허용하는 특별법이 없는 이상 A씨의 호적정정을 허용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대법원은 A씨의 호적정정신청을 허용할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기각한 원심판결을 파기하였다. 호적법 제120조 제정의 근본적인 취지는 호적의 기재가 부적법하거나 진실에 반하는 경우에 간단한 절차를 통해 사실에 부합하게 수정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대법원은 신청인이 성전환자라고 증명되는 경우에 호적정정을 하여 진정한 신분관계를 나타내는 것이 위 법률의 입법 취지에 합치된다고 보았다. A씨의 경우 성장과정에서 지속적으로 남성성에 귀속감을 느꼈고 이러한 성별인식아래 남성의 성에 맞게 외관을 갖춰 주위 사람들로부터 남성으로 인식되었다. 때문에 전환된 성을 본래의 성이라고 보더라도 타인과의 관계에 중대한 변동을 일으키거나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을 것으로 여겨 대법원은 A씨의 호적정정신청을 받아들였다.
위 판결은 대한민국 최초로 성전환자의 성별정정을 허용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로 인하여 생긴 성별정정 허가기준은 여전히 다른 나라에 비하여 매우 엄격하였다. 독일을 포함한 다수의 나라가 성전환자에게 외과 수술이나 의료적 조치를 요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법 문언에서도 해당 조치가 필요하지 않다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세계적인 흐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신체외관의 요건을 요구하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뿐이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성별정정 기준에 큰 변화를 가져온 판결이 2013년 3월 15일에 내려졌다. 성기성형 없이도 성별정정을 인정하여야 한다고 판단한 서울서부지방법원의 판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서울서부지방법원】2013. 3. 15.자 2012호파4225 결정
성적지향․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는 성별정정허가에 ‘외부성기’를 요구하는 신체외관 요건을 완화하기 위하여 남성성기 성형수술을 받지 않은 5명의 FTM(Female To Male) 당사자와 함께 서울서부지방법원에 성별정정을 신청하여 허가 결정을 받았다.
성전환자의 가족관계등록부상 성별정정허가와 관련하여 대법원 판례와 예규는 ‘외부성기를 포함한 신체외관’을 생물학적 성별과 반대의 성으로 바꿀 것을 요구하였다. 이러한 엄격한 요건 때문에 성별정정을 받지 못하였던 많은 성전환자가 자신의 외관과 가족관계등록부상 성별의 불일치로 생활 전면에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성적지향․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는 당사자들과 함께 외부적 성기성형 없이도 성별정정을 허가해야 한다는 소를 제기하였고 승소하였다. 그들은 외부적 성기성형으로 인한 위험부담이 큰데 반해 이로써 얻는 만족감은 적어 합리적이지 못하다고 설명하였다. 수술을 통해 갖게 된 외부성기는 생식기 기능을 하지 못하고 괴사하는 등 의료적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또한 성전환자들은 성별문제 탓에 주민등록등본이 필요 없는 일용직 일자리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어 경제적 어려움도 크다고 하였다. 그들에게 막대한 수술비용의 성기성형을 요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그들의 성별정정을 인정해주지 않는 것과 다르지 않다. 때문에 법원은 단순히 외부 성기를 성형하지 못하였다고 성별정정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보아 FTM 5명의 성별정정을 인정해 주었다.
위 2013년 성별정정 관련 판결을 이끌어 낸 한가람 변호사는 “장애나 성 소수자 같은 소수자들의 인권 상황은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인권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본인은 다수에 속한다고 생각하여 소수자의 인권문제를 외면할 수 있지만, 누구나 특정 측면에서는 소수일 수 있기에 이들의 인권을 위하여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성기성형 없이 성별정정을 인정한 위 판결은 ‘소수자를 위한 싸움’의 첫걸음이 되었다. 다만 성별정정 요건의 완화가 FTM의 경우에만 적용되며, MTF(Male To Female)의 경우에는 별다른 언급이 없다는 한계가 있다. 외부적 성기성형은 유형에 상관없이 위험성이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재판의 당사자였던 FTM의 경우만 고려되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러한 한계를 극복해 나가기 위해서 그들'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김시은, 정지숙, 박지윤 기자>
* 위의 글은 숙명여대 법과대학 <법지法誌> 제30호(2014)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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