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세계문화유산등재 뒤 어두운 그림자
정확한 역사 사실 반영 통해 논란 없애야
지난 7월 5일 독일 본에서 열린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유네스코는 ‘조선인 강제 노역 인정’을 조건으로 일본이 등재를 신청한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 규슈-야마구치와 관련 지역'에 대한 심사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날 일본의 사토 구니 주 유네스코 대사는 세계유산위원 회의에서 영어로 정부 성명을 읽으며 "1940년대 몇몇 시설에서 많은 한국인과 외국인들이 자신들의 의사에 반해 끌려와 가혹한 환경에서 일하기를 강요받았다(forced to work)"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역사적 사실이 있는 그대로 반영돼야 한다는 우리나라의 입장이 받아들여진 것이며 한일 양국 관계에 안정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결과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세계유산 등재 직후 일본 정부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발표한 성명의 일본어 번역본에서 '강제 노동'이라는 표현에 대해 말을 바꿨다. 기시다 일본 외무장관은 5일 메이지 산업혁명 시설이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결정된 직후 “사토구니 주 유네스코 대사가 언급한 ‘강제 징용’이라는 표현이 ‘강제 노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라고 말했다. 또한, 아사히 신문을 포함한 일본의 여러 신문 매체는 '강제 노동'을 의미하는 'forced to work'라는 표현의 가번역을 ‘일하게 됐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수동형 표현인 '하타라카사레타'로 표현했다. 앞서 한국은 세계유산위원 회의에서의 입장 표명 기회에 '강제 노동'의 의미를 명확히 담은 'forced labour'라는 표현을 쓰려고 했지만 한일 양국 간의 협의에 따라 해당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
일본의 애매한 행보는 피해자에 대한 추모조치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자국 근대 산업 시설에서 일한 강제 노역 피해자들을 기리는 조치와 관련해 국적을 구분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는 출신지와 관계없이 사고·재해를 당하거나 사망한 사람들을 광범위하게 추모하겠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최근 2차 세계대전 당시 강제 징용을 주도했던 '미쓰비시 머티리얼(당시 미쓰비시)'이란 기업은 처음으로 강제징용 됐던 900여 명의 미군 포로에게는 이미 사과를 했으며 중국인 피해자 3천여 명에게는 사과와 보상을 하기로 했다. 그러나 미쓰비시는 소송이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우리나라 피해자들에 대한 언급을 피했다. 우리나라의 징용 피해자가 최소 10만 명이라는 것을 고려해 볼 때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의 이러한 행태는 조선인의 강제 징용 피해 사실을 명확히 밝히지 않겠다는 뜻으로 비춰진다.
강제 노역을 동원한 곳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신청한 것은 일본이 처음이 아니다. 독일 에센의 출페어라인 탄광 산업단지의 경우 일본과 달리 2001년 세계유산 신청 당시 위원국들의 반발이 없었다. 이는 독일 정부가 탄광이 강제노역에 쓰였음을 감추지 않고 추모시설을 건립하는 등 반성과 사죄에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반면 일본은 하시마 등 산업시설이 강제 징용에 활용된 사실이 공개될까봐 등재 신청서에 세계문화유산 지정 시기를 1850∼1910년으로 제한했다. 이에 우리나라 정부는 “한반도 침탈과 태평양전쟁 시기에 이 시설이 훨씬 왕성하게 이용됐음에도 1910년까지로 지정 시기를 제한한 건 꼼수”라며 일침을 가했다.
일본 정부는 정확한 역사 사실을 반영하지 않는다는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근대산업시설에 강제 징용의 역사를 분명히 하고 2차 세계대전 일본 정부가 징용 정책을 시행했다는 사실을 표시해 피해자들을 기릴 수 있는 적절한 노력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 정부 또한 강제 노역의 의미가 정확히 표현 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외교활동을 펼쳐야 할 것이며 이를 통해 우리나라 피해자들이 진정한 사과를 받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박소현 (법14, 법지 기자)
* 이 기사는 법지 별간호 제5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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